솔로몬의 긴 훈계는 자녀들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말과 삶이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방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자녀에게 훈계하던 그의 말은 그의 삶과 달랐다.

나의 삶은 언행일치하고 있는가? 삶이 기초가 되지 않은 말은 효력이 없다.

솔로몬이 그의 행실로 자신의 말을 뒷받침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가치를 잃었다면 우리 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떠한가? 주님은 주님의 말씀과 언제나 하나이시다.

내면으로 공급되는 주의 말씀은 외부로부터 흘러드는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주의 자녀는 주께서 내면에 부어주시는 은혜를 공급 받으며 사는 것이며 이것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주께서 나누게 하시는 것은 이 깊은 은혜의 맛이며 은혜를 경험한 즐거움이다.

잠언에서 볼 수 있는 다윗의 자녀 교육 메시지와 솔로몬의 자녀교육 메시지는 거의 동일하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배운대로 가르치기 마련이다. 훈계하는 스승에게서 훈계하는 제자가 나오고 훈계하는 부모에게서 훈계하는 자녀가 나온다.

내가 양육한 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연약함과 문제점이 보여도 내가 훈계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윗의 자녀 교육이 솔로몬과 같은 사람을 만들었다면 솔로몬의 자녀 교육이 르호보암을 만들었다. 같은 메시지의 전혀 다른 결론이다.

양육의 메시지는 I-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메시지의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전하려는 메시지와 일치된 삶을 사는가의 여부이다. You-메시지는 저항을 부르는 메시지이다.

다윗이 어려움 중에 하나님을 향해 보인 믿음이 그의 말에 가치를 부여해 준다.

내 말에 진심이 담겨 있는가. 나는 진실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의 손은 완전하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다. 나쁜 일이 삶에 벌어진 것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서 그 일이 발생하도록 허락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지도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기도 하시며 죄를 벌하시기 위해서 고난 을 허락 하시기도 하신다.

삶에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 님과의 관계에서 그 까닭을 찾아야 한다. 원수 는 주의 자녀된 인생을 흔들 힘이 없다.

신명기 32:27 -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 원수 가 오해하고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 하시도 다